저장되지 않은 파일 -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늙어온 한 남자의 하루
저장되지 않은 파일
1.
월요일 아침, 김태식은 낡은 노트북 가방을 어깨에 걸치며 지하철에 올라탔다.
오십이 넘어서도 출근길은 여전히 낯설었다. 아니, 낯설다기보다는 — 매일 똑같은데 왜 이리 피곤한가, 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는 손잡이를 잡고 핸드폰을 꺼냈다. 팀장이 새벽 여섯 시에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떠 있었다.
"김 과장님, 오늘 오전 중으로 3분기 실적 엑셀 파일 업데이트 부탁드립니다. 팀즈로 공유해 주세요."
팀즈. 김태식은 그 단어를 속으로 되뇌었다.
마이크로소프트 팀즈. 2년 전 회사가 도입하면서 다들 "줌이랑 비슷한 거"라고 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줌이 아니었다. 채팅이 되고, 파일이 공유되고, 회의가 열리고, 할 일 목록이 뜨고 — 어느 순간 자신의 하루가 팀즈 안에서 시작되고 팀즈 안에서 끝나고 있었다.
윈도우가 세상을 바꾼다고 했던 때가 떠올랐다. 1995년. 태식이 스물다섯이던 해. 회사 전산실에서 윈도우 95 설치 디스켓을 스물한 장 넣었다 뺐다 했던 기억. 마우스로 아이콘을 더블클릭하면 폴더가 열리던 그 신기함.
그때는 MS가 '저기 어딘가'에 있는 회사였다. 지금은 — 그는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 그냥 공기 같은 것이었다.
2.
사무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화면에 뜨는 것은 당연히 윈도우였다. 로그인하면 엣지 브라우저가 자동으로 열렸다. 회사 인트라넷도, 그룹웨어도, 결재 시스템도 엣지로 접속했다.
"엣지로 열어주세요. 크롬은 호환이 안 됩니다."
총무팀 공지가 떠오를 만큼 이제 크롬은 사무실 안에서 이방인이었다.
태식은 엑셀 파일을 열었다. 3분기 실적 데이터. 셀 하나하나에 숫자를 채워 넣으며 생각했다. 나는 엑셀이 나온 해에 중학생이었다. 1985년. 그때 엑셀이 있었다는 것도 한참 뒤에 알았다. 대학 때 처음 배웠고, 입사하고 나서 진짜로 쓰기 시작했다. VLOOKUP을 처음 배웠을 때의 그 희열. 피벗 테이블을 혼자 해냈을 때 옆 자리 이 대리에게 자랑했던 기억.
지금 이 대리는 없다. 이 대리는 작년에 나가서 스타트업을 차렸다. 아직 잘 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옆 자리엔 스물여섯 최 사원이 앉아 있다.
최 사원은 엑셀을 '마이크로소프트 365'라고 불렀다. 구독형으로 쓰는 오피스라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클라우드에 자동 저장되고, 여러 명이 동시에 같은 파일을 수정할 수 있다고 했다. 태식이 "그거 엑셀 맞지?"라고 물었더니 최 사원이 웃었다.
웃음의 의미를 그는 정확히 알고 싶지 않았다.
3.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핸드폰으로 결제하려고 간편결제를 열었다가, 그 안에 마이크로소프트 계정으로 로그인하는 링크가 떠 있는 걸 봤다. 링크드인. 회사에서 사원증 발급할 때 링크드인 프로필을 등록하라고 했다. 링크드인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한 회사였다.
편의점 계산대 옆, TV 화면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마이크로소프트, AI 코파일럿 기능 오피스 전 제품에 탑재 예정…"
코파일럿. 최근 회사 노트북에도 업데이트가 되면서 작업 표시줄 오른쪽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아무도 쓰라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그냥 거기 있었다. 태식은 한 번 눌러봤다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문장을 보고 창을 닫아버렸다.
뭘 물어봐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었다.
물어보는 것 자체가, 어딘가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4.
오후 네 시, 팀 회의가 팀즈로 열렸다.
카메라를 켜고 마이크를 확인하는 순간, 화면에 자신의 얼굴이 떴다. 오십삼 세. 머리카락이 관자놀이부터 희어지고 있었다. 눈 아래 그늘도 짙었다. 태식은 가만히 자신의 얼굴을 봤다.
회의가 시작됐다.
팀장이 파워포인트 화면을 공유했다. 마이크로소프트 파워포인트.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발표에 쓰인 프로그램. 태식이 처음 파워포인트를 배운 건 1998년이었다. 당시 부장이 "슬라이드쇼라는 기능이 있다더라"고 했고, 태식이 밤새 매뉴얼을 읽어서 다음 날 혼자 써냈다.
그 부장은 지금쯤 일흔이 다 됐을 것이다.
회의는 삼십 분 만에 끝났다. 결론은 엑셀 파일을 수정해서 팀즈 채널에 올리고, 워드로 요약본을 만들어 메일로 공유하는 것이었다.
윈도우, 엑셀, 워드, 팀즈, 아웃룩.
하루 종일 MS 안에서 살았다. 태식은 퇴근 전에 잠깐 멈춰 생각했다. 아침에 핸드폰 알람으로 깼을 때도 윈도우 효과음과 비슷한 소리가 났던 것 같았다. 집에 있는 아들 녀석은 엑스박스로 게임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마이크로소프트였다.
MS는 그의 삶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다. 다만 예전엔 보였고, 지금은 보이지 않게 됐을 뿐이었다.
5.
퇴근 버스 안에서 태식은 다시 핸드폰을 꺼냈다.
문득 궁금해져서 검색창에 입력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설립 연도.'
1975년. 빌 게이츠가 스물 살에 세운 회사.
태식은 1971년생이었다.
그러니까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보다 네 살 어렸다. 그런데 세상은 MS가 만든 것들로 가득 찼고, 그는 그 안에서 출근하고 회의하고 보고서를 쓰고 퇴근했다.
창밖으로 저녁 풍경이 흘러갔다. 가게 간판들, 신호등, 버스 안 광고판에 흐르는 영상.
어디선가 윈도우 시작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물론 실제로 들리진 않았다. 그냥 그런 기분이었다.
태식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저장하지 않고 창을 닫아도, 어차피 자동 저장이 되는 세상이었다. 그는 그냥 집에 가기로 했다.
오늘도 파일은 클라우드 어딘가에, 잘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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