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멈출 수 없는 파도 앞에 서서 - AI 시대, 한 가장의 담담한 독백
우리가 멈출 수 없는 파도 앞에 서서
— AI 시대, 한 가장의 담담한 독백 —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뉴스 알림이 쏟아진다. AI가 의사보다 암을 더
정확하게 진단했다, AI 변호사가 소송에서 승소했다, 물류
창고의 로봇이 인간 노동자를 대체했다. 읽다 보면 잠이 깬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쉰두 살, 두 아이의 아버지, 직장인. 이 나라에서 평범하다는 것이 이토록 불안한 자리였던가 싶다.
나는 AI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두렵지 않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어떤 거대한 것이 이미 시작되었고, 그것이 나를, 내 가족을, 내가 살아온 방식 전체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바꾸어놓고 있다는 느낌이다. 막을 수 없는 파도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이 글은 그 느낌에 대한 기록이다.
1. 노동의 종말과 '자산 양극화'의 가속화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했다. 열심히 일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았고, 덕분에 아파트 한 채, 아이들 교육비, 노후 대비용 작은 보험 하나를 마련할 수 있었다. 땀과 시간을 팔아
얻은 것들이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그 등식을 뒤흔들고 있다.
AI는 반복적인 업무를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한다. 콜센터, 회계, 법률 문서 검토, 심지어 기사 작성과 디자인까지. 이제 '열심히'의 기준이 달라졌다. 인간이 하루 8시간 동안 처리하는 업무를 AI는 몇 분 만에 끝낸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비용'을 제거하는 합리적 선택이다. 그 합리성의 희생양이 노동자다.
더 무서운 것은 양극화다. AI를 소유한 자와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자 사이의 격차는 이미 벌어지고 있다. 엔비디아 주식 한 주의 수익이 어떤 노동자의 한 달 월급을 넘어서는 세상이 왔다. 자산이 자산을 낳고, 기술이 기술을 가진 자를 더 빠르게 부유하게 만든다. 땀 흘려 일한 사람이 보상받는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큰아이가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나는 '성실하게 살아라'고 배웠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그 조언이 아이에게 여전히 유효한지 자신이 없다. 성실함이 통하는 세상인지, 아니면 이미 다른 게임의 규칙이 시작된 것인지.
2. '인간의 가치'에 대한 실존적 위기와 상실감
나는 내 일을 통해 존재감을 느껴왔다.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후배에게 경험을 전달하고, 복잡한 문제를 풀었을 때의 성취감. 그것이 단순히 월급을 받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나다움'의 일부였다. 그런데 AI가 그 모든 것을 더 잘한다면, 나는 무엇으로 나를 정의할 수 있을까.
이것은 단순히 일자리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오랫동안 노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그 기여를 통해 존엄을 느껴왔다. 일이 있다는 것은 내가 쓸모 있다는 증거였다. AI가 그 자리를 대신할 때, 우리는 어디서 쓸모를 찾아야 하는가. 철학적 질문이 아니다. 매우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다.
주변을 보면 벌써 그 상실감이 사람들 안에 스며들고 있다. 수십 년 경력의 전문직 종사자가 AI 앞에서 흔들린다. 글 쓰는 사람이 ChatGPT 앞에 망연자실한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Midjourney를 보며 손을 멈춘다.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패턴의 조합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의 그 무너지는 느낌. 나 역시 그것을 느끼고 있다.
물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들 말한다. 공감, 창의성, 관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이 위로가 되려면, 사회가 그 가치를 실제로 인정하고 보상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나는 그저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으로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3.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거버넌스의 공백'
기술이 앞서가고 제도가 뒤따라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AI의 속도는 차원이 다르다. 6개월 전의 AI와 지금의 AI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반면 국회에서 AI 관련 법안을 논의하는
속도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ChatGPT가
무엇인지를 묻는 사이, 기술은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다.
AI로 인한 실직자 보호, 데이터 주권, 알고리즘 편향, 딥페이크 범죄. 이 모든 문제들이 터지고 있지만 뚜렷한 규칙이 없다. 기업은 책임을 회피하고, 정부는 대응 방안을 연구하는 중이라 말하며, 피해는 이미 현실에서 쌓이고 있다. 법이 없으니 구제도 없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교육이다. 지금 초등학생인 둘째가 사회에 나올 때쯤에는 어떤 직업이 남아 있을까. 학교는 여전히 암기와 시험 중심이다. AI 시대에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국가 비전이 뚜렷하지 않다. 준비되지 않은 아이들이 준비되지 않은 세상에 던져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 불안하다.
기업에게 모든 것을 맡겨서는 안 된다. 빅테크 기업들은 AI의 윤리적 문제를 내부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말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이익 앞에서 윤리는 늘 뒷전이었다는 역사적 교훈이 있다. 강력한 공공 거버넌스, 국제적 협약, 사회안전망의 재설계가 시급하다. 하지만 그것이 제때 이루어질 것이라는 낙관은 아직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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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퇴근하면 아이들이 각자 방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AI 챗봇과 대화하고, AI가 만든 영상을 보고, AI가 추천한 음악을 듣는다. 아이들에게 AI는 이미 자연스러운 환경이다. 어쩌면 이 혼란을 크게 느끼는 것은 나처럼 '이전 세계'를 기억하는 세대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혼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노동의 종말, 인간 가치의 위기, 거버넌스의 공백. 이 세 가지는 결코 과장이 아니며,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진행되고 있다. 파도는 막을 수 없다. 하지만 파도에 대비하는 것, 파도에 휩쓸리는 사람을 구하는 것, 파도 이후의 세상을 어떻게 만들지 결정하는 것 — 그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나는 오늘도 출근한다. 내 자리에서, 내 방식으로. 거창한 저항도, 무기력한 포기도 아닌,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담담하게.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성실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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