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롤이 멈추지 않는 날들 - 내 삶의 가장 우선 순위, 인스타그램

 
검정색 계열의 블로그 썸네일. '스크롤이 멈추지 않는 날들, 오늘도 알람보다 인스타그램이 먼저다 - 소셜미디어에게 승리' 한글 텍스트와 함께, 챗봇과 로봇 팔, 데이터 차트, 비행기 등 산업 혁신을 상징하는 아이콘들이 포함된 현대적인 디자인.

스크롤이 멈추지 않는 날들



오늘도 알람보다 인스타그램이 먼저다

오전 7시 14분.

알람이 울리기 6분 전, 이수아는 이미 눈을 떴다. 정확히는 눈을 뜬 것이 아니라 손이 먼저 움직였다. 잠에서 깨는 것과 거의 동시에, 마치 반사 신경처럼 오른손이 머리맡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의식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자는 동안에도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처럼, 손은 이미 인스타그램 앱을 누르고 있었다.

29세. 서울 마포구의 작은 콘텐츠 마케팅 회사에 다닌 지 3년째. 직함은 콘텐츠 기획자. 오늘 오전까지 제출해야 하는 브랜드 캠페인 기획안이 있다. 어제 퇴근 전에 절반쯤 써두었다. 나머지 절반은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마무리하려고 일부러 알람을 7시 20분에 맞춰두었다.

그러나 수아는 지금 기획안 대신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고 있다.

누군가의 제주도 여행 사진. 팔로우하는 인플루언서의 신상 가방 언박싱. 어젯밤 올린 자신의 게시물에 달린 댓글 확인. 좋아요 숫자. 스토리. 릴스. 릴스. 또 릴스.

20분이 지났다. 수아는 그제야 화면에서 눈을 떼고 천장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이 사라져 있었다. 기획안의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노트북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집중하려 했다, 진짜로

오전 9시 30분, 사무실.

수아는 자리에 앉자마자 노트북을 열었다. 기획안 파일을 켰다. 오늘 오전 11시까지 팀장에게 보내야 한다.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반. 충분했다. 집중하면 30분이면 쓸 수 있는 분량이었다.

그러나 손가락이 문서 작업 창이 아닌 브라우저 탭을 클릭했다. 인스타그램. 집에서 이미 봤는데, 출근하는 동안 지하철에서도 봤는데, 사무실에 앉자마자 또 열었다. 의식하지 못했다. 탭을 클릭하는 그 0.5초 사이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냥 손이 갔다.

피드에 새 게시물이 세 개 올라와 있었다. 보는 데 2분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그녀를 2분 만에 놔주지 않았다. 릴스 하나가 재생되었고, 그 끝에 또 다른 릴스가 자동으로 이어졌다. 강아지가 주인을 기다리는 영상이었다. 웃겼다. 저장했다. 다음 영상이 시작됐다.

11분이 지났다.

수아는 탭을 닫았다. 기획안 창으로 돌아왔다.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쓴 문장 뒤에.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집중하려 했다. 정말로.

그러나 30초 후, 이번엔 유튜브가 열려 있었다. 어떻게 열었는지 기억이 없었다.




하루에 몇 번이나 이러는 걸까

점심을 먹고 돌아온 오후 1시.

수아는 오전에 결국 기획안을 11시 40분에야 간신히 제출했다. 팀장은 아무 말 없었지만 수아는 알았다. 그 기획안이 자신의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있었다. 내용도 머릿속에 있었다. 그런데 결과물이 초라했다. 마감 10분 전에 허겁지겁 마무리한 티가 났다.

오후 업무를 시작하면서 수아는 스마트폰을 서랍 안에 넣었다. 오늘 오후만큼은 제대로 집중해보자는 다짐이었다.

14분 후, 서랍을 열었다.

그냥 한 번만 보려고 했다. 오전에 올린 스토리에 반응이 왔는지 확인만 하려고 했다. 확인했다. 반응이 있었다. 답장을 보냈다. 그러다 그 상대방의 프로필에 들어갔다. 최근 게시물을 봤다. 그 사람이 태그한 장소에 들어갔다. 그 장소를 태그한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봤다.

정신을 차렸을 때 시간은 오후 2시 11분이었다.

수아는 스마트폰을 다시 서랍에 넣었다. 이번엔 서랍을 잠갔다. 열쇠를 가방 안 깊숙이 넣었다.

22분 후, 가방을 열고 열쇠를 꺼냈다.




밤이 되면 더 심해진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오후 7시.

수아의 저녁 계획은 나름 촘촘했다. 저녁을 먹고, 요즘 배우고 싶었던 카피라이팅 온라인 강의를 한 시간 듣고, 읽다 멈춰둔 책을 30분 읽고, 11시 전에 자는 것. 충분히 가능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소파에 앉는 순간, 계획은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인스타그램을 봤다. 유튜브 쇼츠를 봤다. 틱톡을 봤다. 누군가의 일상이 흘러갔고, 누군가의 여행이 흘러갔고, 누군가의 맛집이 흘러갔다. 수아의 저녁도 함께 흘러갔다.

온라인 강의 앱은 열지 못했다. 책은 손도 대지 않았다.

자정이 넘었을 때 수아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오늘 하루가 떠올랐다. 제대로 한 것이 없었다. 기획안은 부실했고, 오후 업무는 절반도 못 끝냈고, 저녁 계획은 통째로 날아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피로했다.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데 몸이 무거웠다. 눈이 뻐근했다. 손가락이 저렸다.

스크롤을 하루 종일 올리고 내린 손가락이.

수아는 그날 밤 다이어리에 짧게 썼다.

"오늘도 졌다. 내일은 진짜로 해보자."

그리고 다이어리를 닫으며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자기도 모르게.




중독인 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

수아는 자신이 소셜미디어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잘 안다. 평균 하루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6시간을 넘는다는 것도, 그중 절반 이상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라는 것도, 스크린 타임 앱이 매주 보고서를 보내줄 때마다 확인한다. 그리고 매주 같은 반응을 한다. 이번 주는 줄여야지. 다음 주는 달라질 거야.

달라지지 않는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이것을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라고 말한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사용자가 최대한 오래 머물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무한 스크롤, 간헐적 보상, 좋아요 알림, 자동 재생. 이 모든 기능이 인간 뇌의 도파민 회로를 겨냥해 만들어졌다. 의지력이 강한 사람도 이 설계 앞에서는 쉽게 무너진다.

그러나 수아는 그 설명을 들어도 완전히 위안이 되지 않는다. 알면서도 못 멈추는 자신이 더 답답하기 때문이다.




오늘 밤, 수아는 다시 다짐한다

오늘도 하루가 저물었다.

수아는 침대 옆 테이블에 스마트폰을 올려두는 대신, 처음으로 거실 충전기에 꽂아두고 방으로 들어왔다. 작은 변화였다. 어쩌면 내일 아침이면 또 허물어질 다짐일 수도 있다.

그래도 오늘 밤만큼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폰이 있다.

수아는 책을 펼쳤다. 읽다 멈춰둔 페이지를 찾았다. 첫 줄을 읽었다. 두 번째 줄을 읽었다. 세 번째 줄에서 멈췄다. 인스타그램에 오늘 찍어둔 사진을 올릴까 하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수아는 그 생각을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는 것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다시 세 번째 줄을 읽었다.

작은 승리였다.

내일도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알람보다 빠른 손, 서랍 속 폰, 무너지는 저녁 계획. 그러나 오늘 밤 거실에 두고 온 스마트폰처럼, 조금씩 거리를 두는 연습을 수아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스크롤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수아는 오늘, 한 페이지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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